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지열 에너지의 '길'을 찾다: 서울대학교 민기복 교수
구글은 국내 과학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기초 과학 연구 지원 프로그램(Foundational Science Grant)’ 대상자로 서울대학교 민기복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조계춘 교수 팀을 선정했습니다. 지열 에너지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친환경 에너지원이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지하 환경과 유동 효율성 저하라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이번 지원은 첨단 수치 모델링 및 머신러닝 도구로 이러한 난제를 극복하고, 국내 전력망에 안정적인 무탄소 전력을 공급하는 토대를 다지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 인공지열발전기술(EGS)을 통해 지열정(Geothermal wells)을 위한 최적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을 개척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민기복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서울대학교 민기복 교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민기복 교수입니다. 제 전공은 암반공학이며, ‘지오메카닉스(Geomechanics)’라고도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암반이 압력, 물, 열의 영향을 받을 때 어떻게 변형되고, 힘을 버티고, 균열이 갈라지고, 그 틈을 따라 물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방사성폐기물 지하처분장, 심부 지열에너지 등이 저의 주요 응용분야입니다.
지열에너지는 지구 내부에 저장된 열을 활용하는 에너지입니다. 뜨거운 암반이 있는 지하로 물을 주입하고, 그 물이 암반의 열을 받아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면 이 열을 전기 생산이나 난방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땅속이 눈에 보이지 않고 불투명(不透明)하다는 점입니다. 암반 속에는 수많은 균열이 있고, 물은 그 균열을 따라 흐르지만, 어느 방향으로 물이 잘 흐를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말하는 ‘스위트 스팟 방향(Sweet Spot Orientation)’은 지열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최적의 위치와 방향을 의미합니다. 즉, 물을 주입하는 주입정 주변의 생산정을 어디에, 어떤 방향으로 배치해야 물이 뜨거운 암반을 가장 잘 통과하고, 더 많은 열을 회수할 수 있는지를 찾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보이지 않는 ‘땅속의 지열에너지를 위한 길찾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연구는 암반역학, 첨단 컴퓨팅을 활용해 지열 발전정의 최적 경로를 찾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스위스팟방향 지열생산정의 위치에 다른 생산량 변화 모식도>
기초 과학 연구 프로그램에 선정되신 소감 부탁드립니다
먼저 너무 감사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열에너지는 탄소중립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지만, 아직까지는 대중적으로 태양광이나 풍력만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구글이 지열에너지의 가능성과 그 안에 있는 과학적·공학적 난제를 주목해 주었다는 점이 매우 뜻깊습니다. 저는 구글이 디지털 사회를 앞당기는 글로벌 기업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구촌의 에너지와 탄소중립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것을 알게 돼 매우 기쁩니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기저부하가 될 수 없는 약점이 있는 반면, 지열에너지는 날씨나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입니다. 통상 기저부하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땅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과정을 더 잘 이해하고 예측해야 합니다. 이번 지원을 통해 보다 도전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 있게 되어 연구자로서 매우 기대가 큽니다.
2026년 2월 서울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학생들과 함께 방문한 세계최대 지열발전소인 미국 '더가이저스'
그동안 국내에서 지열 에너지 상용화를 가로막았던 '숨겨진 난제'들은 무엇이며, 교수님의 연구는 이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지열에너지의 난제는 핵심 과정이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다는 점에 기인합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심부 지열에너지의 난제를 1) 높은 시추비용, 2) 인공저류층 생성의 불확실성, 3) 지하 심부 조사의 어려움, 4) 에너지생산의 지속가능성 여부, 5) 유발지진 등으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제 연구는 두번째 주제에 해당합니다.
한국처럼 자연적으로 물이 잘 통하는 대규모 지열 저류층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는, 지하 암반의 균열을 활용하거나 인공적으로 유동 경로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암반 속 균열은 매우 복잡합니다. 어떤 균열은 열리고, 어떤 균열은 미끄러지고, 어떤 균열은 거의 반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물이 모든 방향으로 똑같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훨씬 더 잘 흐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방향에 따라 투수성이 달라지는 현상을 ‘투수성 이방성’이라고 합니다.
기존에는 지열 저류층을 설계할 때 이러한 방향성의 효과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습니다. 저희 연구는 수압자극 과정에서 균열이 미끄러지고 벌어질 때, 물이 어느 방향으로 더 잘 흐르게 되는지를 정량적으로 예측하고자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주입정과 생산정의 위치와 방향을 최적으로 설계하면, 같은 지하 조건에서도 유량이 많아져 더 많은 열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저희 연구의 목표는 지하를 단순히 불확실한 ‘블랙박스’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리 법칙과 데이터, 시뮬레이션을 결합해 보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연구는 종종 '지열 생산정(well)을 위한 GPS'에 비유되곤 합니다. 첨단 시뮬레이션과 컴퓨팅 기술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의 열 경로를 파악하고 최적화하는 데 어떻게 활용되나요?
‘지열 생산정을 위한 GPS’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GPS는 목적지까지 가장 효율적인 길을 안내해 줍니다. 저희 연구가 하고자 하는 일도 비슷합니다. 다만 길이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 킬로미터 깊이의 땅속 암반 균열 속에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지하의 균열망은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암반의 응력 상태, 균열의 방향, 수압자극에 따른 균열의 미끄러짐과 벌어짐, 그리고 물과 열의 이동을 컴퓨터 안에서 재현해야 합니다. 첨단 수치 시뮬레이션은 이러한 지하 저류층의 ‘가상 실험실’을 만들어 줍니다.
이 가상 실험실 안에서 우리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빠르게 시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입정과 생산정의 방향을 바꾸면 물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균열의 방향성이 열 회수 효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배치가 생산성을 높이면서도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좋은 GPS가 교통 상황을 반영해 더 나은 경로를 제안하듯이, 저희 연구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지하 내비게이션’ 도구를 만드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2025년 12월 중국 베이징대에서 진행한 심부 지열에너지 초청 강연
이번 연구를 통해 지열 발전의 유량 효율이 50% 이상 높아진다면, 궁극적으로 한국과 세계의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어떤 기여를 하게 될까요?
지열 발전에서 유량은 온도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2개의 요소입니다. 같은 온도의 암반이라도 물이 더 잘 순환하면 더 많은 열을 회수할 수 있고, 발전이나 열 이용의 경제성이 크게 향상됩니다. 따라서 주입정과 생산정 사이의 유량을 50% 이상 높일 수 있다면, 이는 지열에너지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이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에너지 자원의 94% 정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열에너지는 국내 지하에 존재하는 열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에너지 자립 측면에서도 중요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지열에너지는 태양광이나 풍력과 달리 날씨나 시간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저탄소 에너지원입니다.
물론 하나의 연구가 곧바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아직 갈길이 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열 개발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고, 발전정 설계의 신뢰도를 높이는 연구는 상용화의 중요한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저희 연구가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에너지 포트폴리오를 더 다양하게 만들고, 에너지 자립과 탄소중립을 향한 현실적인 선택지를 넓히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